록과 클래식은 과연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New Trolls의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는 오케스트라와 록 밴드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며,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이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이정표가 된 작품이다.
New Trolls, 장르의 경계를 허문 밴드
제노바의 비트 록 신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의 황금기를 이끈 선구자들
뉴 트롤즈(New Trolls)는 1966년 이탈리아 북부의 항구 도시 제노바에서 결성된 록 밴드다. 초기에는 비트 뮤직과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의 영향을 바탕으로 활동했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며 클래식과 재즈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표하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특히 서정적인 멜로디와 정교한 편곡,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록 밴드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이탈리아 록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밴드의 중심에는 기타와 보컬, 플루트를 담당한 비토리오 데 스칼치(Vittorio De Scalzi)와 강렬한 하이톤 보컬과 기타 연주로 존재감을 드러낸 니코 디 팔로(Nico Di Palo)가 있었다. 여기에 베이시스트 조르조 다다모(Giorgio D'Adamo), 드러머 지아니 벨레노(Gianni Belleno), 그리고 키보디스트 마우리치오 살비(Maurizio Salvi)가 가세해 완성도 높은 앙상블을 선보였다. 이들이 만들어낸 섬세한 하모니와 드라마틱한 곡 전개, 그리고 하드 록의 에너지와 클래식적 감수성이 공존하는 사운드는 이후 수많은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바로크와 록의 완벽한 공존
루이스 바칼로프의 구상 아래 클래식과 록이 대화하듯 만난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의 기념비
1971년 발매된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는 클래식의 엄격한 형식미와 록 음악의 에너지가 결합한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작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루이스 엔리케스 바칼로프(Luis Enríquez Bacalov)가 작곡과 오케스트라 편곡을 맡았고, 뉴 트롤즈는 록 밴드 파트의 연주와 편곡에 참여해 독창적인 협연을 완성했다. 프로듀서 세르지오 바르도티(Sergio Bardotti)의 지원 아래, 이들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협주곡 형식인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를 현대적인 록 앙상블로 재해석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오케스트라가 단순한 반주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케스트레이션과 록 밴드가 서로 주고받으며 긴장감 있는 대화를 이어가는 구조는 바로크 협주곡의 문법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특히 밴드가 일종의 독주 그룹(Concertino)처럼 기능하면서 오케스트라와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전개는 당시 록 음악에서 보기 드문 시도였다.
수록곡 가운데 일부는 마우리치오 루치디 감독의 이탈리아 스릴러 영화 'La vittima designata'의 사운드트랙으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이 자국어 가사를 사용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에는 영어 가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클래식과 록이라는 서로 다른 음악 언어를 무리 없이 결합해 낸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는 이후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의 방향성을 제시한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에도 심포닉 록과 크로스오버 록의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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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파트와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인터레이스
바로크풍의 서두부터 자유로운 잼 세션까지, 클래식과 록이 교차하는 극적인 구성
본 작은 루이스 바칼로프가 구상한 네 개의 'Tempo'로 이루어진 콘체르토 그로소 파트와, 뉴 트롤즈 멤버들의 연주력을 전면에 내세운 대곡 'Nella Sala Vuota'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가 오케스트라와 록 밴드의 유기적인 공존을 보여준다면, 후반부는 정교한 작곡의 틀에서 벗어나 밴드 특유의 즉흥성과 하드 록적 에너지를 자유롭게 분출한다.
특히 작품 전반에서 들려오는 플루트와 일렉트릭 기타의 대비는 인상적이다.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플루트와 블루지한 색채를 머금은 기타는 오케스트라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여기에 장엄한 현악 편곡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더해져 클래식과 록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문다.
또한 멜로디 곳곳에는 이탈리아 가곡과 칸초네 특유의 낭만적 정서가 스며 있다. 과장되지 않은 담백한 레코딩 속에서도 오케스트라와 밴드의 균형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유지되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하지 않는 절묘한 편곡 감각을 보여준다. 바로 이 균형감이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를 단순한 크로스오버 작품이 아닌,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의 고전으로 남게 만든 가장 큰 이유다.
타임리스 사운드로 기억되는 다섯 가지 명장면
햄릿의 독백을 품은 아다지오부터 지미 헨드릭스를 향한 헌사까지
1° Tempo: Allegro
앨범의 문을 여는 짧고 강렬한 기악곡이다. 루이스 바칼로프가 구축한 장엄한 오케스트레이션 위로 플루트와 일렉트릭 기타가 서로 응답하듯 선율을 주고받으며, 작품 전체의 방향성을 단번에 제시한다. 바로크풍의 단정한 분위기와 록 밴드 특유의 역동적인 리듬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이후 펼쳐질 클래식과 록의 대화를 예고하는 인상적인 서곡 역할을 수행한다.
2° Tempo: Adagio (Shadows)
뉴 트롤즈를 대표하는 명곡이자 국내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트랙이다. 애잔한 하프 반주와 서정적인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해 니코 디 팔로의 감성적인 기타 연주가 더해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To be or not to be" 구절을 인용한 영어 가사와 애수 어린 멜로디는 곡의 비극적인 정서를 한층 배가시킨다. 특히 국내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방송 등을 통해 많은 리스너들에게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의 매력을 처음 알린 곡으로 회자된다.
3° Tempo: Cadenza – Andante Con Moto
클래식 협주곡의 핵심 요소인 카덴차를 록의 문법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곡이다. 곡 전반을 이끄는 바이올린의 애절한 선율과 극적인 전개는 깊은 인상을 남기며, 이후 오케스트라와 밴드가 번갈아 등장하면서 긴장감 있는 대화를 이어간다. 현악기의 우아함과 록 밴드의 에너지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심포닉 록적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트랙 가운데 하나다.
4° Tempo: Shadows (Per Jimi Hendrix)
1970년 세상을 떠난 지미 헨드릭스에게 바치는 헌정곡이다. 앞선 악장들의 오케스트라 중심 전개에서 벗어나 블루지한 기타와 하몬드 오르간이 전면으로 나서며 보다 강한 록 색채를 드러낸다. 니코 디 팔로의 거친 디스토션 기타와 자유로운 솔로 연주는 헨드릭스가 남긴 음악적 유산에 대한 존경과 애도를 동시에 담아낸다. 클래식과 록의 융합이라는 앨범의 큰 틀 속에서도, 뉴 트롤즈가 본래 뛰어난 하드 록 밴드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강렬한 순간이다.
Nella Sala Vuota, Improvvisazioni Dei New Trolls Registrate In Diretta
LP B면 전체를 채우는 20분이 넘는 대곡으로, 제목 그대로 뉴 트롤즈의 라이브 즉흥 연주를 기록한 잼 세션에 가깝다. 클래식의 엄격한 형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몬드 오르간의 사이키델릭한 질주와 기타 리프, 그리고 지아니 벨레노의 길고 역동적인 드럼 솔로가 이어지며 멤버들의 연주력이 폭발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예기치 않은 분위기 전환은 마치 70년대 유럽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현장감 넘치는 라이브 잼 세션을 직접 마주하는 듯한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의 문을 열어준 작품
클래식과 록의 경계를 허물며 이탈리아 심포닉 록의 방향성을 제시한 기념비
뉴 트롤즈의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는 단순한 크로스오버 음반을 넘어 클래식과 록이라는 서로 다른 음악 언어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역사적인 작품이다. 루이스 바칼로프의 정교한 바로크풍 오케스트레이션과 뉴 트롤즈의 역동적인 밴드 사운드는 유기적인 균형을 이루며, 이후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화려한 기교나 실험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뛰어난 작곡과 편곡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 명반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국내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수록곡 'Adagio (Shadows)'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애호가들의 구전을 통해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고, 많은 리스너들에게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게 만든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이를 계기로 PFM, Osanna, Banco del Mutuo Soccorso, Museo Rosenbach 같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이 국내에 더욱 널리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이 앨범은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발점이었다. 클래식의 우아한 형식미와 록 특유의 뜨거운 에너지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설득력 있게 증명해 낸 작품이자, 지금도 심포닉 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다.
